의사의 몰입과 경영자의 두루살핌 

개원한 병원의 병원장은 두 역할을 동시에 가진다.

한가지는 의료 전문성을 가진 의사로서 역할이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경영자의 역할이다. 경영자의 역할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 결정에 들어갈 인력과 예산에 관해서도 판단한다. 의사 역할은 병원장에게 익숙해서 별다른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수행한다. 하지만 경영자의 역할은 부자연스럽고 막연하다.

병원장이 이 두 가지 역학을 수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의사와 경영자의 각각의 역할 모두 쉽지 않고 많은 책임이 주어지는 일이다. 게다가 이런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어려움은 두 역할이 주는 각각의 어려움을 합한 것보다 더 크다. 의사의 역할과 경영자의 역할은 서로 충돌하기 쉬운 특성이 있다. 어떤 문제에 관해서 판단을 내릴 때 바라보는 방식이 다르다. 증상을 깊이 살펴야 하는 의사의 관점과 현상을 넓게 봐야 하는 경영자 관점은 서로 상충한다.

동시에 역할을 수행하는 병원장은 이 두 관점을 능숙하게 바꾸며 역할을 수행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하나의 역할만 수행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들고 효율은 더욱 떨어진다. 관점이 바뀌면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상당한 스트레스가 생긴다. 이런 정신적인 소모는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병원장의 역할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번아웃에 이르게까지 만든다.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병원장의 역할 자각이다.

스스로가 서로 다른 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것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역할에 따른 관점 차이를 이해하고 상황에 맞게 능동적으로 조절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병원장은 병원의 생존을 위해 당장의 과업을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그래서 의사로서 익숙한 미시적인 관점만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경영자의 거시적 관점을 놓치면 노력에 비해 더디게 성장하는 병원이 되기 쉽다.

의사의 관점과 경영자의 관점을 오가는 노련함은 병원장의 역량에 따라 달라진다.

집중력과 인내력으로 이 두 가지를 능숙하게 다루는 병원장도 있고, 경영지원조직을 별도로 둬서 경영적인 관점을 조직으로 대체하는 방법을 취하기도 한다. 병원의 규모가 커지면 진료하지 않고 경영에만 몰두하는 경우도 있다. 두 역할이 가지는 고단함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병원장의 몫이다.